1월 14일. 자카르타에서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게는 매우 인상적인 자카르타 시민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그때 적어놨던 단상들 몇 개를 런던에 와서야 비로소 옮겨 보면.
사실, 한 시간 여 전까지 있던 바로 옆에서 참혹한 일이 발생하니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마치 고1때 삼풍사건의 데쟈뷰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선명히 남은 것은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자카르타 시민들의 모습과 희망이었다. 파리테러만큼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이고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테러직후부터 SNS와 오프라인에서 번져갔는데, 처음에는 #PrayforJakarta로 공유되던 것들이 이후 #kamitidaktakut (we are not afraid)로 바뀌어갔다.
초보 인도네시아어 수준밖에 안되지만, 인도네시아어에는 흥미롭게도 '우리'라는 표현이 두 가지가 있다. 'kita'는 듣는 사람을 포함한 '우리'이고, 'kami'는 듣는 사람을 제외한, 그들에게 말하는 '우리'가 된다. '나'라는 표현보다 '우리'라는 표현을 더 애용하는 우리말이 떠오르면서 (한글에서는 my school, my company가 아니라 '우리 학교'. 외아들인 사람도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을 하지 않는가), '우리'의 개념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했었다.
아무튼 시민들은 테러리스트에게 보란듯이 '우리'의 결연한 의지를 외치는 듯한 모습을 먼저 보여주었다. 실제, 테러 다음 날 친구들과 함께갔던 추도행사에서는 테러 직후라고는 생각하기 힘든만큼 밝은 모습의 시민들이 엄숙하면서도 즐겁게 다양한 방식의 의사표출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뉴스를 보니, 테러 직후에도 테러 장소였던 별다방 바로 앞에서 사테(꼬치구이)를 유유히 굽는 상인의 모습이 큰 화제가 되었던 것 같다. 한 현지인 친구는 내 해석이 과하다라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두려워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아닌 더욱 당당하게 삶을 그대로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모습으로 보여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15일 추도행사 때 우연히 만난 영국대사 Moazzam Malik였다. 그는 셔츠차림으로 한 명의 비서만 대동한 채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더욱이 바틱(현지옷)을 입고 있던 내가 현지인 줄 알고 유창한 인도네시아어로 한참 말을 건넸다. 일국의 (그것도 '대국'의) 대사가 그전에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곳에 부임해서 현지어를 매주 수업 받으며 열심히 배우고, 부임지 국민들이 아픔을 느끼는 자리에 함께하는 모습이라니. 너무 훌륭하지 않은가!
대통령에 대한 현지의 평가는 매우 다양하고 집권 3년차로 접어들면서 비판의 강도는 거세지는듯 하다. 하지만 테러 후의 조코위(Joko Widodo)가 보여준 모습은 무척 훌륭했다. 비극적인 세월호 사태 때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을지 모를 7시간을 보낸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과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조코위는 센트럴 자바를 방문 중이었는데 모든 일정을 바로 취소한다. 테러 발생 약 1시간 50분경에 TV에 직접 나와 테러를 규탄하고 동시에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즉석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카르타로 돌아오자마자, 테러발생 6시간쯤이 되었을 무렵 조코위는 현장인 사리나몰과 피폭된 경찰서 초소를 직접 방문하고 근처의 시민들과 소통한다. 근접거리의 별 다른 경호 없이 흰색 셔츠 차림으로 뚜벅뚜벅 현장으로 걸어가는 TV 생방송에서의 모습은 자국민들에게 강렬한 메세지를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전 세계에서 4번째로 페북 가입자가 많은 인도네시아의 시민들은 SNS와 블랙베리메신저, LINE 같은 채팅앱으로 결연한 조코위의 메세지를 공유했고, 다음 날 집회를 자발적으로 기획했다. 테러 다음 날 조코위는 또 한 번, 자신의 당선으로 자카르타 시장직을 물려받은 아혹(Ahok) 시장과 함께, 사리나 몰을 직접 방문해서 놀랬을 상인들을 위로하고 정상적인 영업을 독려했다. 피해자 유가족들도 만나서 사과와 위로의 말도 전했다.
더 중요한 것은 조코위의 대 테러에 대응방식이, 즉각적으로 ISIS에 대한 전쟁을 선언한 올랑도의 그것과 상당히 달랐다는 점이다. 물론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파리의 테러와, 미국과 군사적 동맹관계에 있는 프랑스의 위치와는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마 이슬라미아에 의한 2002년 발리테러가 멀지 않은 얘기인 인도네시아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에 대한 가장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국내정치의 목적이든 대외적이든, 더 강경하고 위기의식을 최고조로 이용하는 대응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안정과 소위 resilience를 강조하는 것이 적어도 군사적 대응만큼 중요하고, 테러에 대한 접근이 다른 방식이 존재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사회적 안정과 이를 위한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엉뚱하다고만 들리지는 않는다.
비록 몇 개월 체류한 외국인의 눈으로는 많은 것들을 놓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과 슬픔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지도자와 자신들의 삶을 그래도 살아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파리보다 더욱 평화적이면서도, 잔잔한 그들의 대응에 무척 감명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극단적이지 않는 와중에 흔들리지 않는 결연한 그들의 모습은 테러가 명백히 실패했음을 오히려 선명히 보여준다.
아래는 몇 가지 사진들.
Jokowi's visit to Sarinah
http://www.nytimes.com/live/jakarta-indonesia-explosions/president-joko-widodo-visits-attack-site/
Resilience in Jakarta
http://www.rappler.com/indonesia/119077-indonesia-wrap-teror-sarinah-jakarta